| 때문에 동의보감을 공부하는데 있어서 ‘신형문’을 간과한 채 처방만을 공부한다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마치 뿌리 없는 열매를 얻으려 하는 것과 다름없다. 아마 ‘신형문’의 의미와 가치를 주목하고 이를 연구한 경우는 아마 거의 없을 듯하다. 아마 본서가 ‘신형문’에 대한 연구서로서는 처음이 아닐까 한다.
‘신형문’의 첫 장이 ‘형기의 시작(形氣之始)’인데 거기에는 우리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구절 이 있다. ‘사람은 태역(太易)에서 시작하고 병은 태소(太素)에서 시작된다’는 구절이다. 이것의 함축은 무엇일까? 간명하게 말해서 사람이 나고 그 이후에 병이 생겨났다는 것, 그러니 병을 붙잡고 병을 다스리려 해서는 결코 병을 근본적으로 고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사람을 모르고서는 그리고 사람을 고치지 않고서는 병을 고칠 수 없다는 이야기다. 달리 말하면 사람을 고치는 데서 병은 저절로 낫는다는 이야기다.
요즘의 의술은 사람을 보지 않고, 인체의 원리를 외면하고 병만 고치려 한다. 현대의술이 미궁에 빠지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 아닐까?
병을 고치는 것을 의술이라 하고 사람을 고치는 것은 ‘법(法)’이라 한다. 같은 침을 써도 병을 고치는데 국집하면 침술이고 사람을 고칠 수 있으면 침법이다. 무수한 질병에 대한 처방을 전해주고 있는 동의보감은 단순히 병을 고치자는 것일까, 아니면 사람을 고치자는 것일까? 의술을 전하고자 한 것일까, 법을 전하고자 한 것일까? 동의보감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 관문을 지나야 한다. 독자들은 과연 어느 문을 열고 들어갈 것인가?
이 책은 동의보감의 첫 장만을 다루고 있는 100여 쪽의 얇은 책이지만 그 제목을 <동의보감의 세계>로 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본서는 '신형문(身形門)'의 첫 장인 '형기지시(形氣之始)'에서 '양생요결(養生要訣)'에 이르는 21편으로 구성되어 있는 바, 동의보감에 수록되어 있는 원문에 주석(註釋)과 평석(評釋)을 붙이고 또 경우에 따라서는 논설을 붙여서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주석과 평석은 단순한 해설이 아니라 전에 없던 전혀 새로운 이해방식을 제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독자들이 눈여겨보았으면 한다.
가령 정기신(精氣神)에 관한 부분이나 인체 구성의 중추를 이루는 단전(丹田)이나 삼관(三關)에 관한 부분들에서는 기존의 이해방식이 지닌 오류를 바로 잡고 있다. 아마 본서를 읽게 되면 독자들은 건성으로 보아 넘겼던 ‘신형문’의 의미와 그 중요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될 것으로 확신한다. 또한 질병론과 건강론에 대해서도 생각의 폭과 깊이를 더해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믿는다.
본 편집부가 이 책을 내게 된 이유는 다름 아니다. 동서를 막론하고 의술만이 난무하는 시대에 진정한 학(學)으로서 그리고 진정한 법(법)으로서의 질병의 원인과 처방은 무엇인가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진인(眞人)의 가르침을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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